You ain't gotta hold my hand, just walk with me to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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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grapher ' Nan Goldin' Part-1




낸 골딘(Nan Goldin)의 사진을 말하기 전에 나는 우선 낸 골딘이라는 사람에 대해 말할 수밖에 없다. 나는 글을 쓰는 동안 내내 객관성을 잃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다. 그만큼 나는 내가 써야 하는 모든 사실들에 너무 밀접히 얽혀 있었다. 그리고는 글을 쓰는 중간중간 우습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녀를 너무 오랫동안 알아 왔고, 너무 여러 곳을 함께 다녔기 때문이었다. 유럽을 포함한 여러 곳을 때론 일 때문에, 때론 순전히 즐기기 위해 함께 다닌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낸은 내 부족한 기억력으론 헤아릴 수도 없을 만큼 내 사진을 많이 찍었고, 하나의 '대가족' 이라 할 만한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낸의 친구들은 동시에 나의 가족이기도 하다.

다행이었던 것은, 낸의 사진을 말할 때 어떤 특정한 비평적 관점에서 주의를 기울이는 일이 전적으로 불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낸과 그의 사진은 하나의 일체를 이루기 때문에, 일단 진정한 이해에 이르는 순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저항할 수 없이 빨려 들게 한다.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스스로 해답을 주기 때문이다. 사진이 찍히는 상황과 그 사진에 묻어 있는 지나간 시간을 재구성해내는 일에는 관객에게도 어느 정도 적극적인 역할이 있게 마련이다.
표현을 좀 달리한다면, 낸의 사진을 보는 관객 역시 어느 한순간 낸 골딘의 이른바 확장된 가족에 포함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녀의 사진에는, 정신적으로 또 영적으로 공통분모를 가지는 일련의 인간 부류들이 보여주는 상호 인지과정이 제의처럼 드러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전혀 엘리트주의적이지 않고, 특정한 계급이나 국적, 기호에 의해 규정되지 않는다. 한계상황 등을 묘사하는 가장 노골적이고 거친 사진에서마저도 보는 이들이 공명할 수 있는 어떤 공통의 원형성이 드러나 있고, 그들로 하여금 같은 기억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얘기가 들어 있다.
골딘의 작업은 자기 세대 앞에 세워 놓은 하나의 거울과 같다는 얘기가 종종 들린다. 또한 우리로 하여금 우리 시대의 집단적 경험이 가지고 있는 어떤 환상에서 깨어나게 하는 기록이라는 얘기도 있다.
둘 다 약간 피상적인 견해이다. 단순히 사실을 기록한 것으로, 또 어떤 새로운 모습의 리얼리즘의 옷을 입은 것으로 간주하려는 이런 경향은 사실 마뜩찮은 평가이다.
그런 평가는 낸에게서 영향을 받은 수많은 추종자나 모방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낸의 부분적 일면에 대한 평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전혀 새로운 감수성으로 대상에 접근하면서 점차 계속 '진행 중인 작업'의 한 부분이 되도록 만들어 가는 낸의 독특한 작업방식은, 확실히 여타의 다른 사진가들이 가지지 못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작업은 이미 통상적 사진의 범주를 벗어나 있다. 이런 점에서 낸 골딘은 유별난 본보기가 된다.







우선 가장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골딘이 낭만주의적인 작가라는 점이다. 낸은 반(反)이데올로기적이고 결코 고압적이지 않다.
윤리적이긴 하지만 도덕주의자는 아니다. 낸의 작업은, 이를테면 리얼리티의 재현과 같은 사진의 전통적 관례를 훨씬 뛰어넘어 새로운 이슈들을 제기하고 있다.
여기에는 진실과 시뮬레이션 사이의, 개인의 역사와 집단의 역사 사이의, 산문과 시 사이의 관계성들이 포함된다. 낸은 '공식적' 사진사(寫眞史)와 그것의 제한적인 분류방식을 정면으로 부인해 버리는 자신의 화법을 만들어낸 것이다.
따라서 그녀의 사진에 대해 묻는 것은 거울에 비치는 상(像)처럼 무한대의 미궁으로 빠져 드는 것과 같다. 물음은 그녀에 대한 것임과 동시에 어떤 면에서는 우리 사진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보다 정확히 말한다면 그녀 안에서 발견해내는 우리 자신의 속성들에 대한 물음이기 때문이다.

얘기는 1960년대초, 워싱턴의 별 특징 없는 한적한 마을에 살고 있던 한 중산층 가정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버지와 네 자녀가 있었고, 그 네 아이들과 함께 민권운동 집회에 참가하곤 하던 자유롭고 진보적인 어머니가 있었다.
당시 미국의 보수적 분위기에 식상해 있던 전형적인 유태인 지식인 가정이었다.
가족모두를 보여주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한 장 남아 있다. 어느 식당에서의 축하 모임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964년 이었다. 바버라 홀리와 스티븐이 부모와 함께 앞줄에 앉아 있고, 그 뒤로 이제 갓 열 살을 넘긴 낸시와 조나단이 서 있다. 앨리스 밴드(Alice band)를 착용한 낸시는 가족 중 유일하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지 않다.
당시 낸시의 꿈은 정신분석가가 되는 것이었다. 언니 바버라 홀리는 낸시에게 마음으로 통하는 친구이자 삶의 한 본보기였고, 재능있고 열성적인 피아니스트 였다. 나른하고 즐거운 시골 생활이 일 년간 이어졌다. 같은 나이 또래의 아른 여느 여자아이들처럼 '아메리칸 드림'에 빠져 있었던 시간이었다. 그런 후 어둠의 시기가 찾아왔다.

1965년 4월 12일, 언니 바버라가 끔찍한 방법으로 자살한다. 당시 열여덟이었다. 바버라의 죽음은 가족 모두에게 깊은 상흔을 남긴다. 낸시의 부모들은 상실감과 죄책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엄청난 이 사실을 단지 부정하느 것으로 일관했다.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버라의 죽음을 이웃들이 모르게 하는 것이었다. 낸시에게도 사고로 죽은 것으로 말한다.
그러나 예민한 낸시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 알고 있었고, 깊이 상처받게 된다.
어떤 경우라도 진실을 찾아내는 데 집착하고, 만일 그것이 진실이라면 불편함이나 따분함, 체면 손상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는 그의 태도는 아마 이 사건에 연원하는 것 같다.
낸시는 온갖 사람들과 온갖 사물들을 대상으로 격렬한 싸움을 벌인다.
그녀는 미국 정신의 어두움으로 존재하는, 그 '꿈' 뒤에 감춰진 악몽인 다대의 거짓과 물질주의를 가장 미워했다.

이윽고 카메라로 눈을 돌린다. 낸시는 이제 낸이 된 것이다. 낸은 스스로도 잘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 순종적인 가족주의의 힘겨운 억압으로부터 벗어나, 1960년대의 흐름에 몸을 던지게 된다.
고통과 자유를 위한 일종의 훈련기간이었다. 낸은 집과 부모를 버리고 나왔고, '서머 오브 러브 (Summer of Love, 히피 운동이 절정을 이룬 1967년 여름에 샌프란 시스코에서 열린 대규모 회합-역자)'에 고무되어 히피적 공동체 생활에 빠져들어 갔다. 불행히도 그런 삶의 형태는 환상속의 것이기가 일쑤일 테지만,
적어도 그 환상은 자유와 활력으로 무들여진 것이었고, 낸의 절친한 동료 그룹 안에서 매일매일 진지하게 추구되었던 그런 것이었다.
이때 찍었던 사진은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찍었던 개인적 사진과 함깨 1996년 뉴욕이 휘트니 미술관에서의 회고전에서 '대즐 백(Dazzle bag)'이란 제목으로 처음 전시된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풀어 헤친 긴 머리를 한 젊은 여자가 사려 깊은 눈길로 바라보고 있는 사진이 보인다. 약간은 겁먹은 표정이기도 한다.
카메라는 이미 낸의 일부가 되어 있었다. 뚜렷이 드러난 목적도 없이, 아직 그 정체조차도 분명치 않은 어떤 집념의 형태로 그녀의 삶에 들어온 것이었다.
골딘에게 중요했던 것은 그저 찍고 또 찍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사라지고 잊혀질 것들을 고정시켜 두고자 하는 욕구가 그를 붙들고 있었다.







메사추세츠 주, 링컨의 사티아 커뮤니티 스쿨에서 학교 사진가로 일하던 때와 후에 보스턴 미술대학에 적을 두고 있던 때, 처음으로 본격적인 사진 작업이 시작된다.
이때, 패션 사진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데, 고전적이고 전통적인 사지보다는 『보그(Vogue)』와 같은 경향의 사진 쪽에 기울게 된다. 여전히 전통적 방식을 따르고 있긴 해도, 사진 곳곳에서 그것을 넘어서고 그것과 마찰을 내는 요소들이 보인다. 그 사진들에는 삶과 진실이 너무 충일하게 들어 차 있어,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가식과 허영의 모든 언어들을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해, 거칠게나마 르포르타주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으면서도 내용상 그 문맥은 사뭇 달라, 보다 개인적으로 밀착되며 보다 참여적인 사진이 되어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그의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나 래리 클라크(Larry Clark, 특히 1971년에 출간된 그의 책 『털사(Tulsa)』)와 맥을 같이하며, 여러 면에서 그들과 연계성을 가진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피상적인 관점에서만 그렇다. 내용 면에서 본다면 이 작가들은 아주 다르다. 적어도 이 초기의 작품들로만 보더라도, 고린의 작업에는 다큐멘터리나 이데올로기적 목적이 내재해 있지 않다.
또한 네오리얼리즈의 사명가미 보이는 것도 아니다. 대신, 추상적 구조가 지배하던 당시의 시각예술 판도에서 벗어나, 순간을 잡아 두고자 하는 순수한 결심을 읽을 수 있다.

보스턴에 있는 동안, 낸은 삶 자체로부터 삶을 배웠다. 낸은 그 도시의 여장 남자들(drag queens)을 자신의 스승으로 택했다.
그들은 낸을 사로잡았고, 그들의 삶으로 통하는 입장권을 제공해 주었다.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집이나 바, 클럽을 전전하면서 낸은 그들 여장 남자들과 함께 일상을 나누었고, 강박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그러면서 그들의 기쁨과 슬픔에 동참했고 비밀을 함께 나눈다. 그들은 아메리칸 드림과 그 물질주의가 가지고 있는 김 빠진 획일주의, 그리고 은밀하게 숨겨진 이 나라의 정치적 호전성에 대해 되도록 이면 거리를 두려고 했다. 보스턴의 이 여장 남자들은 프랑스의 고급 매춘부 마담 레카미에(Madame Recamier)의 포스트모던적 등가물이었다.
그들은 모든 인습적 논리와 성별에서 벗어난 방탕과 무절제를 낸에게 소개해 주었고, 또한 화류계의 퇴폐적 관능을 보여주었다.
당시 아직 십대를 채 벗어나지 못했던 영화감독 존 워터스(John Waters)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 냉소적인 블랙 코미디에 재능이 있었던 그는
과연 무엇이 미국인인가 하는, 이데올로기적 전형을 추구하는 쪽으로 강하게 기울어 있었다. 이에 반해 골딘의 접근은 보다 인간적이었고 순수했으며, 슬프고 정직했다.

'대즐 백'에는 컬러로 찍은 셀프 포트레이트가 한 점 있다. 나이트클럽의 테이블들을 배경으로 붉은 이브닝 드레스를 입은 낸은 플래시가 달린 커다란 리플렉스카메라를 들고 있다.
마치 사진가 위지(Weegee)의 품위를 연상시키는 사진이다. 이제 히피에서는 완전히 벗어난 모습이었다. 막여하나마 '글래머'라고 부를 수 있을 그런 모습이었다.
비록 여전히 인간 영혼에 대해 깊은 관심을 견지하고 있었지만, 낸의 변신은 완벽했다. 이 시기와 초창기 창작 동아리 시절 작품으로, 흑백사진 약간과 초기의 실험적 컬러 사진이 남아 있다.
당시의 1973년작 <에스플라네이드에서의 소풍>, 1976년작 <해변의 CZ와 맥스>와 1977년작 <침실에서의 남녀>가 그것인데, 이제는 고전에 속하는 작품들이다.
여담이지만, 그 창작 동아리는 후에 '보스턴파'라는 이름이 붙게 되는데, 필립-로르카 디코르시아, 잭 피어슨, 데이비드 암스트롱 등, 그 동아리의 어떤 사람도 보스턴파란 이름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다 한다.

1978년, 낸은 런던으로 건너간다. 거기서 낸은 불법 건축물에 들어 살면서 클래쉬(The Clash)와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의 음악을 듣고 스킨헤드들과 어울린다.
미국으로 돌아와서는 뉴욕으로 거처를 옮긴다. 펑크 문화는 이미 왔다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 뒤였다. 사람들의 기호는 섹스 피스톨스의 거칢에서 뉴욕 달스(NewYork Dolls)의 부드러운 퇴폐성 쪽으로 옮아가 있었다.
낸은 바워리가(街)에서 머물 장소를 하나 차게 되는데, 윌리엄 버로스(William Burroughs)의 작업실과 존지오노(John Giorno)의 '포이트리 시스템(Poetry System, 1965년에 시와 전자기기, 시와 멀티미디어의 결합을 통해 청중과 만나는 새로운 장을 연 존 조르노의 작업실-역자)' 과는 돌을 던지면 닿을 거리였고, 당시 뉴욕 다운타운에서 가장 일탈적이고 실험적이었던 CBGB 클럽을 바로 마주 보고 있었다.
당시 사진 전시회는 아주 드물었고, 더구나 '처음 보는 새로운' 사진에는 더욱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낸은 나이트클럽의 바텐더로 일하면서 생활을 해결했고, 암실작업은 거의 할 수 엇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런 히겨운 재정적 곤궁은 후일 이루어지는 그의 성공에서 중요한 열쇠가 되어 준다.
보스턴의 예술학도 시절부터 낸은 슬라이드 쇼 방식으로 자기 사진을 전시하곤 했다. 쇼는 네 개의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마치 사적 제의(祭儀)처럼 진행되었다.
또한 '라피크 언더그라운드 시네마'나 '머드 클럽', 또한 나중에는 매기 스미스의 '틴 팬 앨리' 같은, 실험에 호의적인 클러에서 자기 사진을 전시하곤 했다.
당시 그의 '패밀리', 다시 말해 초기의 후원자들은 대부분 낸이 일하던 클럽을 드나드는 사람들이었고, 타임스 스퀘어의 하위 문화 종사자들과 바워리가의 작업실을 함께 쓰던 친구들이었다.







여러 사람들이 낸과 함께 보스턴을 떠나 왔다.
쿠키 뮐러(Cookie Mueller), 섀런 니스프(Sharon Niesp), 브루스 벨버니(Brude Balboni), 데이비드 암스트롱(David Armstrong)이 그들이었다.
이들 중, 오래된 친구 데이비드 암스트롱은 낸시의 이름이 낸으로 바뀌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다. 낸의 이 시절 사진에는 위의 네 사람이 가장 빈번히 모델로 등장한다.
이들 외에도 무수한 남자와 여자, 친구와 연인들, 그리고 낸의 호기심을 유발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찍었던 시절이었다. 이 사진들이야 말로 거듭된 재작업의 과정을 오랜 기간 동안 거치게 되는데, 후일 낸의 가장 유명한 작업이 되는 '더 발라드 오브 섹슈얼 디펜던시(The Ballad of Sexual Dependency)'의 핵을 이룬다.
수천 장의 슬라이드로 이루어진 이 '발라드'는 1980년대 초엽 이래 오늘까지 끊임없이 추가되고, 재편집되고 있다.
by TheICON | 2006/03/26 20:57 | 트랙백
Photographer ' Nan Goldin' Part-2

낸이 사람들을 당황케 하는 이런 '개입(Intervention)'을 통해 예술계에 처음 자신을 드러냈다는 사실은 자못 흥미롭다. 사람들은 고개를 돌렸다. 낸의 '발라드'는, 사진을 미술의 열등한 곁가지 정도로 여기던 당시의 지배적인 이론과 작업 모두에 전적으로 배치되고 있었다. 낸의 슬라이드 쇼는 사진이 가진 연재물적 성격을 강조했다.
뿐만 아니라, 사진이 가지고 있는, 잘라 말하기 힘든 어떤 모호한 불가해성을 강하게 함시함으로써, 사진과 영화언어 사이의 혁명적 연관성을 도출해내었다.
이런 미학적 전복 행위는 문화환경과 예술세계에 대한 어떤 신중한 전술적 계산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낸의 취향과 그에 따른 소박한 선택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 실상 낸은 지금도 대단한 영화광이다. '발라드'가 미국에서보다 유럽에서 먼저 인정받았다는 사실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당시 미국에서는 신디 셔먼(Cindy Sherman)과 로리 시몬스(Laurie Simmons)의 포스트모던 사진이 각광을 받고 있었다.

 


 

'발라드'를 구성하고 있는 각가의 사지은 마치 영화 필름의 한 토막들처럼 보다 복합적이고 큰 이야기에 속하면서 주제별로 나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여자 누드, 거울 앞의 여자, 침실에서의 남녀, 클럽의 표정, 섹스와 같은 것들이 그런 주제들이었다. 그러나 이런 각 사진들은 작푸의 전체 개요와 밀접한 연계성을 가지면서 일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반어법적이고 감상적인 배겨음악이 의도적으로 사용되었는데, 샤를 아즈나부르, 보리스 비앙, 딘 마틴을 포함한 팝과 록 그리고 클래식 음악 들이 섞여 있었고, 마치 브레히트의 '서사극'의 개념에서처러 이 음악들은 전체 개며에서 필수적인 부분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브레히트의 것과 같은 교훈적인 연극과의 유사성은 이것뿐이다. 사진을 통해 버림받은 자와 억압바든 사람들을 그려내는 것이나 예술을 통해 구원을 설교하는 것은 골딘과는 너무 멀었다.
골딘이 살던 때의 타임스 스퀘어는 바이마르 공화국의 베를린이 아니었던 것이다. 또한 절대적 진실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판을 가하고 구원을 획득하는 등의 행위는 실상 불가능한 것이다. 세상은 그렇게 되어 있고, 우리는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견뎌야만 한다.
재평가되고, 사별(死別)을 겪고, 게이 운동을 대표해 끊임없는 정치적 활동을 보여주던 1980년대에, 골딘은 미국과 유럽에 퍼져 나가던 에이즈(AIDS)를 보면서 자기 내면의 깊은 서정성을 스스로 들여다보게 된다.

1976년에서 1989녀에 걸쳐 만들어진 '쿠키 포트폴리오(Cookie portfolio)'는, 1989년 마흔의 나이에 에이즈로 죽은 친구 루키 뮐러에게 헌사된 작품이다.여기서 골딘은, 본능적 미학적 감수성으로 '발라드'를 만들 때와는 사뭇 다르게, 보다 사색적이고 내적인 성찰을 통해 성숙한 작업을 보여주고 있다. 골딘은 이 작업을 통해 보편성에 대한 관심에 바탕한 또 다른 관점을 드러낸다.

우리는 '쿠키 포트폴리오'를 통해 친근하고 개인적인 얘기에 다시 한번 접하게 된다.
가장 충격적인 내용들이 부드럽게 전해지는 것이다. 한 개인에게 속하는 이야기면서 우리 시대의 비극을 대표하는 것으로서, 당대의 예술에서 독특한 의미를 가지는 작업이다.
한 시기가 끝나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나간 시간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실재하는 것의 진실에 대한 다른 인식이 세상의 모든 것을 바꿔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는 사이, 유명 갤러리와 미술관이 다투어 골딘을 초대했고,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된다. 1991년 '독일 학술교류처(DAAD)'로부터 장학금을 받은 그녀는 베를린으로 옮겨 가 삼 년을 머문다.
1990년대 전반 오 년간, 아직 삼십대 중반이었던 골딘은 현대 사진의 중요한 인물로 떠오르게 된다. 1993년과 1995년, 두 차례에 걸쳐 뉴욕의 휘트니 비엔날레에 초청뇌다.
그리고 거듭된 여행기회를 통해 유럽과 극동지방에서 찍은 사진으로 여러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 간다.
앞뒤 맥락과 관계없이 선택된 골딘의 여러 사진들은 현대 시각 이미지의 기준이 되어 갔고, 세계적으로 열렬히 수집되었으며, 책이나 신문, 잡지 등에 무수히 복사되고 변형되고 모방되어, 예술계에서 하나의 주류를 형성해 갔다.
어떤 한 작가의 통찰력이 대중으로 하여금 새로운 취향을 만들게 하는지, 아니면 대중적인 분위기에 의해 한 작가가 마침내 합법적으로 인정되는지는 여기서 무어라 말할 수 없다.

오늘날, 사진과 예술에 대한 논쟁과 단일 사진과 연작 사진에 대한 논쟁은 지난 시기의 유물처럼 남아 있다. 또한 사진이 거의 전시되지 않던 때를 지나 이제는 사진이 넘쳐나는 시기로 넘어와 있다. 물론 개중에는 범용(凡庸)한 것들도 많다. 이러한 때에 골딘은 시각예술의 새로운 고전주의를 재발견해내고 있다. 보다 복잡한 이야기 형식을 취하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지난 수년간의 골딘의 작업에서 사진 포트폴리오가 일종의 조각작품처럼 보이는 것은 사뭇 역설적이다. 조각작품의 삼차원성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작품을 중심으로 주위를 자유로이 돌면서 보게 한다.
그리하여 작품에 떨어지는 제각기 다른 각도의 빛을 감상하게 한다. 1994년의 '도쿄 러브 그리드(Tokyo Love grid)' 등 골딘의 '그리드(에이즈라는 말이 나오기 전에 이 병을 일컫던 말-역자)' 작업은 어떤 개개의 주제에 의해 엮이고 이야기체의 순서로 조직되어 있는데, 작업을 보다 물리적이고 입체적인 것으로 만들어 보려는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여기에는 특정한 관점에서만 바라보려는, 모든 가능성을 차단하고자 하는 의도 또한 포함되어 있다.

 

 


 

 

작업의 원재료는 변함 없었다. 셀 수 없이 많이 일상의 이미지들이 끊임없는 선별과 재편집을 통해 작업의 재료로 추출되었다. 골딘의 아카이브에는 이런저런 이유로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하고 보관만 되어 있는 다수의 뛰어난 작품들이 있다. 소위 성공작들과 비교할 때, 그 작품들은 단순히 그 근사치나 각색판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완벽주의자로 시종했던 골딘은 아주 사소한 이유로 훌륭한 사진을 폐기하기도 했다.
자기 친구들의 아르다움에 깊은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부적절하거나 인색한 이미지를 담아내지 않으려고 아주 조심하곤 했다.
그리고 이런 면에서 좀처럼 실수하지 않았다. 비길 데 없이 예민한 시각적 기억력이 이런 완벽주의에 기여했다. 골딘은 수년 전에 찍었던 사진 한 장도 그것과 비슷한 여러 사진들 가운데에서 정확히 가려 기억해내는 능력이 있었다.
어떤 물질적 대상으로 구현되던 그리드 작업의 무거움과 덧없기까지 한 슬라이드 쇼의 가벼움은 완벽한 균형을 보여주었다. 후자에는 셀프 포트레이트에 기초한 1994년작 '올바이 마이셀프(All by Myself)', 여장 남자에 대한 1993년작 '디 어더 사이드(The Other Side)', 1995년작 '도쿄 스프링 피버(Tokyo Spring Fever)' 등이 있다.

위에서 말한 두 극단적 작업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으로 최근의 설치작업이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감사(Thanksgiving)' 라는 제목의 작품으로 뚜렷한 회고조의 정취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의 사진 백여 점으로 이루어졌는데, 갤러리의 벽을 빼곡히 덮어 버리는 방식으로 전시되었다.
1999년 런던에서 전시되었고, 지금은 사치 컬렉션(Saatchi Collection)에 보관되어 있다. 또한 '스위트 22(Suite 22)'라는 작업이 있는데, 이는 낸이 2000년 여름 뉴욕 루스벨트 병원에 입원했던 오십이 일간의 기록을 재구성한 것이다.

이후, 순수한 회화적 측면에서 풍경과 정물사진에 빠져 드는데, 휘트니 미술관에서의 회고전이 있기까지 낸은 이런 사실을 비밀로 하고 있었다.
1996년작 <새벽의 화산>과 <침대 위의 아침식사>가 여기에 포함되는 예로서, 역사와 과거에 대한 유럽적 감각에 노출된 후에 거기서 자극받아 생긴 경향인데, 종래 우리가 알아 왔던 낸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작업들이 나오게 된다.

얘기의 큰 줄거리 속에 마치 여담처럼 조재하던 이런 작업들은, 이전에 호텔 룸 사진 연작 (『바카트』, 1993)에서 수해된 것과 유사하게 점차 그 자체가 하나의 주제를 형성하게 된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사진들 하나하나는 자신을 매체로 삼아 스스로를 그려내고자 하던, 평소 낸이 우선적으로 가지고 있던 욕구와 애매하고 난해한 방법으로 연결되면서 각각 하나의 초상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른바 낸의 '확장된 가족'에는 여러 새 치구가 들어오기도 하고, 여러 사람이 떠나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작업공간이 타임스 스퀘어와 바워리가에서 파리나 스위스, 이탈리아로 점차 옮아갔다.
여기에는 명백한 개인적인 이유가 있다. 많은 뉴욕 친구들을 에이즈로 잃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마도 보다 깊은 차원의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낸은 유럽에서 지적이고 예술적인 유대감을 느끼고 있었다.

파리와 미국에서 찍은 최근작-여기에는 1999년작 <웃고 있는 조아나>, <키스하는 조아나와 오렐르>, 2000년작 <목욕하는 프랑스인 가족>, <샤토뇌프-드-가다뉴에서 현관 앞에 등을 돌리고 서 있는 조아나> 등의 작품이 포함된다-은 모두 오렐르와 조아나라는 한 예술가 부부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사진의 표면적 완성도를 본다면 우리는 당장 예의 '발라드'를 연상할 수 있다.

그러나 관점 면에서나 이미지가 자아내는 심리적 긴장감 면에서는 아주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파편화한 세계를 재건하는 수단으로서의 우정과 친교에의 희마이 거기에 담겨 있다. 여기서의 우정이란 공공 장소나 타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회합에서의 우정이 아닌, 순전히 가족 생활의 일상을 다룬 배타적인 우정이다.
이렇게 달라진 관점으로 인해 낸은 빛을 다루는 데 있어 하나의 변화를 체험한다. '발라드'에서의 폐소공포증적인 색조로부터 보다 부드럽고 밝은 색조로 옮겨간 것이다.

아직도 낸 골딘을 일러 음울한 여인이니 깊이가 없는 시인이니 하는 말들을 하지만, 실상 그 근거가 대수롭지 못하다.
묘하게도 최근작들은 클럽 등의 배경이 아닌, 1998년작 <파티마의 촛불> 처럼 종교적인 배경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예술과 삶 사이의 변증적 관계에서 배태되고 진실에 대한 그녀의 갈급함에서 솟아난, 또 하나의 순수한 인가적 발전이라고 봐야 한다.
그녀의 힘은 사실 이런 것이다. 렌즈 뒤에 자기 모습을 완전히 감추면서도, 하나의 동정어린 눈길로, 궁극의 의미를 파악하는 열쇠를 강력하게 자신의 존재를 전달하는 능력이 바로 그것이다.
이십년 전과 마찬가지로 오늘날에도, 골딘의 사진들은 행복한, 혹은 비극적인 얘기들의 미로를 향해 열려 있는 창문들이다. 그 얘기들에는 약물과 동성애, 극단적 행위와 성도착증 등이 보조적 요소로 등장한다.
비록 역사적 혹은 사회학적으로는 보조적이 아닐지 모르지만 말이다. 비평가와 해설자들은 이런 보조적 요소에 주목한다. 그러나 정작 작가 자신에게, 이런 것들은 그녀의 작업을 구성하는 필수적 본질이 아닌 우발적인 우연에 불과한 것이다.
골딘은 설명이나 판결을 하는 해설자가 아니라, 자기 주위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전달자이다.

그리하여 어떤 주어진 이미지의 특징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것으로부터 우리의 주의를 사로잡는 일반성을 구축해내는 것이다.
스스로의 방식대로 사는 우리 모두는 낸 골딘의 얘기를 이루는 한 부분들이다. 골딘의 사진에 나오는 친구나 연인의 모습을 볼 때, 그녀가 살았거나 다녀간 장소들을 볼 때, 우리 스스로의 자그만 과거사들이 거기에 겹쳐지는 것을 느낀다.
그 사람들과 그 장소들은 우리 스스로가 경험한 것들로 대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by TheICON | 2006/03/26 20:45 | Talk... | 트랙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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